에세이즘 - 브라이언 딜런 지음, 김정아 옮김/카라칼 |
오해와 편견 속에 자리해 온 에세이라는 형식
그 기묘한 장르는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몽테뉴, 울프, 하드윅, 바르트, 손택, 디디온…
에세이와 에세이스트들에 대한 가장 문학적인 탐구
우리는 에세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에세이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개인의 사정을 세심히 담아낸 글? 경험과 감정을 솔직히 드러낸 글? 소설을 제외한 산문? 아니면 그냥 가볍게 쓴 글? 브라이언 딜런은 에세이를 이런 식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글이야말로 에세이라고 말한다. 이름이나 장르조차 갖다 붙이기 어려운 글, 그것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대개 ‘시도하고, 노력하고, 시험하는 글’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러한 정의는 하나의 작은 출발점일 뿐 에세이를 제대로 가리키진 못한다. 몽테뉴, 베이컨, 울프, 아도르노 등 수많은 문학가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어 왔음에도 왜 에세이는 여전히 흐릿하게만 보일까?
그것은 에세이라는 형식의 내재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딜런에 따르면 에세이는 총체와 분산, 완벽과 파편화, 기록과 발명 같은 상호 경쟁적 충동들을 동시에 품은 장르다. 그래서 대칭성과 완전성에 도달하기를 꿈꾸는 만큼이나, 비대칭성과 불완전성에 뿌리 내리기를 원한다. 〈뉴요커〉는 《에세이즘》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며 이렇게 썼다. “딜런은 에세이를 형식적·기술적 가능성으로 보기도 하고 특정 개념을 전달하는 도구로 보기도 하지만, 비논리성을 감수하겠다는, 심지어 비논리성을 자초하겠다는 태도의 표현 방식으로도 본다.” 그렇다면 에세이와 에세이스트는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독창적이고도 논쟁적인 답변이 《에세이즘》이다.
위대한 에세이스트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
딜런은 자신이 사랑하는 에세이스트들을 하나하나 추적하면서, 그들을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게 독해해 낸다. 책에서 언급되는 수십 명의 에세이스트 중에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버지니아 울프, 에밀 시오랑, 조르주 페렉, W. G. 제발트, 수전 손택, 롤랑 바르트, 존 디디온 등 한국에 잘 알려진 작가도 상당수 있지만,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이미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들어선 이들도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이름이 엘리자베스 하드윅, 윌리엄 개스, 메이브 브레넌 등이다. 딜런은 엘리자베스 하드윅이 문장에서 쉼표를 중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감탄하고, 윌리엄 개스의 스타일 실험에 주목하며, 메이브 브레넌의 디테일한 시선에 감복한다.
딜런은 탁월한 작가들의 문장을 길잡이 삼아 독자로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거나 모험으로서의 새로운 글쓰기 감각을 발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의 에세이와 에세이스트 탐험은 단지 에세이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 글쓰기(읽기)에 대한 상상, 글쓰기(읽기)라는 행위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여정이자 에세이의 다양한 성격을 전방위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다. 응집하면서 일탈하는, 쏟아내면서 주워 담는 딜런의 문장들은 그의 마음을 빼앗은 작가들로부터 저마다의 관점과 방향성 등을 교부받으며 끊임없이 에세이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나간다.
위안을 얻고 우울을 견디는 글
브라이언 딜런은 철저히 생계와 생존을 위한 ‘품팔이 작가’로 지내왔다. 그런 그가 에세이에 유별한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딜런은 글이 주는 위안의 힘을 에세이에서 찾는 사람이다. 문학이 불안을 재우고 위안을 건넨다는 생각, 글쓰기가 우울증의 원인이거나 치료법이거나 가장 통렬한 표현이라는 생각은 물론 클리셰지만, 그는 자신이 우울증으로 겪었던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에세이 쓰기와 읽기를 통해 견뎌냈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다. 우울증과 에세이가 서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구원하는 관계라는 클리셰가, 그에게는 단순한 클리셰를 넘어 일종의 원시 상태와도 같은 전제인 이유다.
이 책에는 ‘위안에 관하여’라는 동일한 제목의 챕터가 총 다섯 번 등장한다. 딜런은 책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글들만큼은 전혀 계획에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책을 써나가면서, 그는 자신의 삶이 문학과 맺었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자주. 우울증을 앓아온 딜런은 이 ‘위안에 관하여’라는 글들에서 자신의 정신 질환과 글 사이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탐구한다. 글쓰기가 “근심하는 영혼을 소진시켜 영혼의 근심을 달랜다는 보조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작가는 어찌해야 좋을까? 딜런은 연거푸 묻는다. “우물이 말라붙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어찌해야 좋을까? 다른 작가들은 어찌할까?” 글 쓰는 삶, 우울한 삶, 그리고 문학과 함께하는 삶에 관한 이 질문들 앞에서 딜런이 꺼내드는 힌트는 결국 ‘에세이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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