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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

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by 멈춘그대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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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10점
조귀동 지음/생각의힘

선진국 진입의 팡파르 너머에서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다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좌건 우건 별다른 이견 없이 도달한 보기 드문 합의다. “머지않아 고도 산업사회를 실현하고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게 될 내일의 조국의 모습”을 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상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되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언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환호 아래에서는 정치가 헛돌고 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리 공들이지 않아도 쉬이 떠올리고야 마는 심상이다. 그렇기에 선진국 한국의 다음 경로는 지금 당장 심상치 않다.
여기, 버르적댈수록 깊게 빠지는 늪에 모두 함께 엉켜 있는 이 땅을 돌아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만성적 위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해부하고 매섭게 파헤치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주목하고,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에 사로잡힌 호남을 소환한 저자가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걸음에 제동을 건다. 왜 우리의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다시피 하는 걸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상황에 봉착할까? 우리는 어떤 선진국을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하는가? 저자는 여러 물음을 던지며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사회와 마주하고 이 악순환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하나하나 짚어 살핀다. 종내에는 “어떻게 정치를 되살릴 것인가”에 관해 논하며,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절실하면서도 살뜰한 제안을 건넨다.

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바람직한 모델로 꼽아온 것은 미국 또는 스웨덴이었다.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진보는 북유럽 사민주의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은 독일 모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산업화를 겪었다. 1960년 전후 ‘경제 기적’이라 불린 고성장을 이뤘고, 1980년대 들어서는 ‘제2차 경제 기적’으로 호시절을 맞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문제로 지적된 것들, 예컨대 방만한 공공 부문과 만성적 재정 적자, 인위적 경기 부양에 대한 의존, 낮은 생산성, 높은 인건비, 투자 부진,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 등이 바뀌지 않으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 정치는 개혁에 나설 추진력을 갖지 못했고, 경제가 정체를 면치 못하며 2021년 1인당 GDP(3만 1,288달러)에서 한국(3만 1,497달러)에 추월당했다(19쪽).
저자는 이탈리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뉜 강한 이중 구조를 보이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는 그대로 사회복지의 이중 구조를 낳는다. 심지어 유럽에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가장 낮은 사회라는 점 또한 닮았다. 경제 구조에 더해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이 저출생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 사정을 살피면, 두 나라 모두 거칠고 진득한 포퓰리즘 정치가 주류에 편입해 있다. 다음 문장의 주어로 한국이건 이탈리아건 둘 중 어느 나라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약속의 땅이 있다.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양쪽에서 강한 이중 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부장제가 끈끈히 남아 있으며, 좌우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젊은이, 특히 젊은 여성을 위한 나라가 없다고 불린다.” 한국이 지금 어떤 유형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있다는 답을 내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어 저자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정치의 위기’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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