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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

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 돌보는 사람들의 창조성에 관하여

by 멈춘그대 2023.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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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러운 방해자 - 10점
줄리 필립스 지음, 박재연 외 옮김/돌고래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앨리스 워커, 앤절라 카터…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모성적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그리고 그 두 가지가 중첩된 영역을 탐색한다. 아이를 버렸다고 욕먹은 도리스 레싱,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이를 뉴욕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내쫓고 방치해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에게 무고를 당한 앨리스 닐의 이야기는 창작과 양육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조적 모성은 이 긴장 속에서 끝없이 재협상하고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남는다. 타인의 비난, 자신의 죄책감, 슬픔,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이 창조적 모성의 양분이 된다.

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을 10년 동안 탐색하다!

여성 작가·예술가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재정립하도록 하는 강렬하고 혼란한 사건이지만, 아무도 지적으로 파고들거나 이론화하지 않았던 ‘모성과 창조성이 만나는 지점’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이 탐구에는 장장 1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수상작가인 줄리 필립스는 (여성) 작가의 평전 작업을 해왔고, 어슐러 르 귄의 전기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긴밀하게 어슐러 르 귄과 인터뷰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글을 써야 하는 스스로의 경험에 동력을 얻어 이 주제의 책에 시작했다.(책을 쓰는 동안 초등학생이던 저자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여성 작가들에 대한 기록을 정밀하게 살핀 저자는 이 책에서 앨리스 닐, 도리스 레싱, 나오미 미친슨, 루이스 어드리크, 어슐러 르 귄, 에이드리언 리치, 엘리자베스 스마트, 수전 손태그, 오드리 로드, 다이앤 디 프리마, 셜리 잭슨, 앨리스 워커, 토니 모리슨, A. S. 바이엇, 로나 세이지, 마거릿 애트우드, 앤절라 카터 등의 매력적인 명사들을 다룬다. 저자가 목차에 포함시킨 이들은 우선 충분히 오래 살아서 양육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경험한 이들이고, 그렇다고 너무 옛날 사람들은 아니어서 1960년대 이후 낙태 합법화나 페미니즘, 흑인민권운동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며, 자신의 몸과 임신, 출산, 양육에 대해 충분한 기록을 남긴 이들인 동시에,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각각 준비되지 않은 임신, 원하지 않은 결혼, 낙태, 아이들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일생 동안 평범한 단혼 관계에서부터 레즈비언 관계, 폴리아모리, 개방혼 같은 다양한 친밀한 관계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깊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양육해냈다.

저자는 여성 작가·예술가들이 남긴 양육과 모성에 관한 일화의 조각들을 정성껏 이야기로 꿰어내면서, 몇 가지 중요한 이론적 개념(혹은 기존 이론의 허점을 꼬집는 개념들)을 제안하기도 한다. 방해받는 주체, 자기소멸, 시간 빈곤, 서사적 시간, 죄책감, 허락받아야 한다는 느낌, 항시 대기중(availability, 아이들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지 만사를 제치고 자신을 내주어야 한다는 느낌), 벙고(바보가 된 것 같은 벙찌는 느낌 + 숭고의 감정, 양육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역설적인 감정), 온전히 거기에 있기, 심아 문제(mind-baby problem, mind-body problem을 비꼰 말장난), 아줌마영웅(aunti-hero, anti-hero의 말장난), 아더마더스(내가 낳지 않은 아이를 돌봐주는 이들) 등의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계단에 놓인 아기’로, 이는 앨리스 닐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를 ‘비상계단(한국식으로 치면 베란다?)’에 가두었다고 시집 식구들이 상상해낸 이미지이지만, 저자는 이를 엄마들이 작업하는 동안 아이를 안전하게 방치하기 위해 찾아낸 창의적인 임시방편을 가리키는 말로 전유한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점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양육과 창작을, 삶을 이어온 여성들의 삶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삶을(그리고 죽음을) 최대한 존중한다.(수전 손태그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에서 이런 태도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할머니 작가·예술가들의 이야기는 20세기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용기를 내기 어려워하는 현대의 양육자 여성들(그리고 양육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남성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자극과 위안과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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