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연에 이름 붙이기 - ![]()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윌북 |
만물에 이름을 붙이고픈 인간의 본능에 관한
이상하고 흥미롭고 아름다운 이야기
이름을 알고 싶은 마음은 ‘관심’의 다른 말이다. 아예 있는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간 것에 대해서는 이름을 지어줄 수가 없다. 수많은 것들 중에서 ‘이건 특별해’ ‘저것과는 달라’라고 생각하는 관심은 관찰과 분류를 낳고, 이 책의 제목처럼 “자연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로 이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레 고대부터 ‘분류학’이라는 과학의 틀이 잡혔다. 우리가 ‘Carol Kaesuk Yoon’이나 ‘캐럴 계숙 윤’이라는 저자 이름을 보고 “아, 이 사람 한국계인가 보다” “윤씨 집안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는 것도 말하자면 그런 분류의 본능이 작동한 덕분이다.
현역 과학자 부모의 딸로 태어나 어릴 적 집 뒤편의 숲속에서 다채로운 동식물과 어울리며 자란 캐럴 계숙 윤도 이러한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비슷하게 생긴 여러 가지 버섯들을, 뱀들을, 토끼들를 하나로 묶으며 세계를 이해해나가는 직관의 힘을 경험했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해 과학을 전공하고, 다윈의 진화론에 매료되고, 마침내 진화생물학자가 된 저자는 놀라운 벽에 부딪힌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바로 그렇게 꽤나 조화롭다고 생각했던 ‘직관적 감각’과 ‘엄밀한 과학’의 세계가 생각지도 않게 치열하게 대결하는 현장을 발견해버린 어느 과학자의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발견과 깨달음의 이야기다.
분류학 vs 진화생물학
과학자의 세계관을 뒤흔들어놓은 대결의 현장 속으로
![](https://blog.kakaocdn.net/dn/xSIDo/btsv7bKUb4j/4TQdBc5tNdVrLykaSpHjpK/img.jpg)
이처럼 이 책은 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온 학자이자 저술가인 그가 온갖 생물의 이름과 질서를 연구하는 학문인 분류학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마주하게 된 뜻밖의 사실, 그로 인해 느낀 커다란 충격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 수없이 다양한 동식물과 어울리며 느꼈던 ‘직관적 감각’과, 인생의 가치관 그 자체였던 ‘엄밀한 과학’의 세계가 옥신각신하게 된 사연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역사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초를 잡고 스웨덴의 ‘위대한 신관’ 칼 린나이우스가 기틀을 다진 ‘분류학’이 마침내 찰스 다윈의 뜨거운 진화론을 통과하면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기술과 학문의 폭발적인 변화로 극적인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기술하는 저자의 필치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웃음과 스릴이 함께한다.
패러다임은 속속 뒤집혀가고 바야흐로 논쟁의 대미에서는 놀라운 과학적 진실이 드러난다. 인생의 가치관을 이루던 과학의 세계 속에서 문득 놓칠 뻔했던 것을 털어놓는 저자의 고백은 그 가운데 놓칠 수 없는 백미다.
이러한 조사와 고찰의 과정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독일어로 ‘환경’, ‘주변 세계’, 나아가 ‘세계관’을 뜻하는 이 개념은, 생명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특유의 감각에 대한 생각을 일깨운다. 저자는 모든 생물에게 각자의 움벨트, 각자만의 지각된 세계가 있음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인류학, 생물학, 인지심리학, 생태학을 종횡무진하며 궁극의 답을 찾아간다. 그렇게 해서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분류학보다 더 큰 분류학에 관한 이야기, 인간과 생명세계, 진화와 과학 사이의 아주 오래된 관계에 관한 생각으로 나아간다.
'북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레인포그 - 내 삶의 몰입과 집중을 되찾는 10가지 방법 (0) | 2023.10.03 |
---|---|
달빛초등학교 귀신부 (0) | 2023.10.02 |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0) | 2023.09.17 |
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0) | 2023.09.15 |
한석준의 말하기 수업 - 말하기에 자신이 생기면 인생이 바뀝니다 (0) | 2023.09.14 |